영화 리뷰 <솔트번> - 언더도그마의 감상에 빠진 부자들과 관객을 통쾌하게 비웃다
영화 리뷰
<솔트번 Saltburn>
언더도그마의 감상에 빠진 부자들과 관객을 통쾌하게 비웃다
* 스포일러 주의
기회가 되어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영화 <솔트번>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전작인 <프라미싱 영 우먼>을 재밌게 보았고 <이니셰린의 밴시>와 <이터널스>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리 키오건이 출연한다 하여 많이 기대했습니다. 영화를 본 감상평을 먼저 남기자면 "오 이런 영화도 있구나. 얄궂은데 매력적이다"는 느낌입니다.
가난한 동성애자의 비참한 사랑이야기?
영화의 주인공 올리버는 옥스퍼드에 다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놀러다니기도 힘들고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어도 다가가지 못합니다. 올리버는 귀족 자제 펠릭스 카튼을 짝사랑하지만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죠. 그러던 어느날 올리버는 자전거가 망가져서 곤란해진 펠릭스를 도와주면서 펠릭스와 친해집니다. 펠릭스 역시 올리버가 다루기 편해 계속 데리고 다닙니다. 마치 인기가 많은 학생이 인기가 없는 친구를 옆에 두는 느낌이죠.
급기야 펠릭스는 올리버를 자신의 가족이 사는 솔트번 성에 초대합니다. 올리버는 펠릭스의 귀족 가문과 함께 솔트번에서 지내며 살면서 누릴 수 없었던 상류층의 여가생활을 즐깁니다. 하지만 평소 펠릭스와 가까이 지내던 사촌 팔리가 올리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팔리가 올리버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은근슬쩍 올리버가 하층민이라는 점을 강조해 올리버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려 하죠.
여기까지의 내용만 보면 상류사회에 사는 남자와 하층민 동성애자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 같습니다. 극초반에 올리버는 집안도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외모에, 동성애자라 위축된 서민으로 나오죠.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앞의 모든 설정이 올리버의 연기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영화는 불쌍한 줄 알았던 올리버가 사실 상상 이상의 사이코패스였다는 걸 보여주면서 올리버를 동정하던 '카튼 가문' 아니 '관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립니다.
관객을 언더도그마의 함정으로 빠뜨리다
영화는 클라이막스 전까지 계속 올리버가 비참하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장면을 많이 배치합니다. 올리버가 입학 초반에 친구가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펠릭스와 어울리기 시작한 후에도 가난 때문에 어색해하거나 팔리에게 견제당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펠릭스가 그의 어머니 엘스베스처럼 가난한 친구를 옆에 두다가 질리면 그냥 외면하는 습성이 있다는 걸 암시하면서 올리버도 언젠가는 쫓겨나겠다는 걸 암시시켜 더 비참하게 하죠.
심지어 올리버의 가정이 불우하다는게 거짓이었다는게 들통나는 장면에서조차 그가 동성애자라 어쩔 수 없이 거짓말로 펠릭스의 관심을 받으려 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게 올리버가 카튼 가문의 재산을 노린 장기적인 사기극이라는 걸 알려주면서 관객을 당황시킵니다. 카튼 가문이 동정하거나 무시하고, 관객이 불쌍하게 여겼던 올리버는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사이코패스였습니다.
영화 <솔트번>은 겉으로만 보면 성소수자의 비참한 사랑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을 다루는 것 같지만 그런 요소들은 반전을 위한 미끼였을 뿐 언더도그마 때문에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영화였습니다. 가난하거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불쌍한 사람이고 도와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카튼 가문이 베푸는 어설픈 위선 같을 때도 있겠죠. 영화는 그런 어설픈 위선쟁이였던 카튼 가문을 제대로 박살내버리면서 올리버를 동정했던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곱씹게 만듭니다.
결론은 영화가 특정 사회나 인간성을 비판하거나 사회고발적인 영화라기보다는 독특한 화법으로 관객을 당황시켰다고 볼 수 있죠.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독특한 화법의 영화가 마음에 듭니다. 전작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한 여인이 자신의 죽음으로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솔트번> 역시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이 반영된 영화라 생각합니다.
"너희들이 날 불쌍하다고 동정했지만 난 사실 너희들의 동정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듯 알몸으로 춤을 추며 관객을 놀리는 올리버. 알몸을 보여주며 비웃는 올리버. 우리가 타인에게 품는 동정심이나 배려심이 순간의 감정이나 위선이 아니길 바랍니다.